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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소식

한국적 동시대성 : 마음의 탑, 지식의 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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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동시대성 : 마음의 탑, 지식의 책장
-오늘의 삶을 견디고, 오늘을 기록하다.
임수식, 김동희 2인 기획전
2026.05.18~06.03
르비드 아트앤라운지
제1전시실 김동희 작가 '염원'

무너짐 이후, 다시 살아나는 마음의 형상

김동희의 '염원'은 돌탑을 그린 작품이 아니다.
그것은 무너짐 이후에도 다시 쌓고,
죽은 듯 보이는 순간에도 다시 살아나려는 인간의 마음을 형상화한 작업이다.
작품 속 돌들은 검은 여백 위에 위태롭게 놓여 있다.
때로는 아주 작은 돌 하나가 훨씬 큰 돌을 떠받치는 듯하고,
때로는 물리적으로는 존재하기 어려운 불안정한 구조를 이룬다.
이 돌탑은 현실 속에서 정교하게 균형을 맞춘 안정적인 탑이 아니다.
오히려 금세 무너질 것처럼 위태롭고, 그럼에도 이상하게 버티고 있는 형상이다.
이 위태로움은 김동희 작업의 중요한 정서이다. 작가의 돌탑은 완성된 기념비가 아니라,
무너짐을 통과한 이후에도 아직 포기하지 않은 마음의 상태에 가깝다.
작가는 삶을 "무너져 내림에도 결국에는 다시 쌓고 쌓아가는 것"이라 말한다.
사람은 저마다 마음속에 탑을 쌓으며 살아가고, 노력과 목표, 관계와 책임, 삶의 총체적인 경험들이
하나의 마음의 탑을 이룬다. 그러나 그 탑이 무너지는 순간 인간은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김동희는 그 무너짐 앞에서 주저앉는 대신,
다시 방향을 정하고 나아가는 행위를 돌탑을 쌓는 일에 비유한다.
그런데 김동희의 돌탑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돌의 표면은 단순한 석질로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나무의 결처럼 보이는 질감이 화면 위에 남아 있다. 이 지점은 작가의 경험과 깊게 연결된다.
작가는 어느 날 산에서 벌목되어 죽은 듯 놓여 있는 나무를 보았다.
그 모습은 당시 자신의 상태와 닮아 있었다. 잘려나가고 멈춰버린 듯한 나무, 더 이상 자라지 못할 것
같은 형상 속에서 작가는 자신의 무너진 마음을 보았다.
그러나 이후 다시 그곳을 지났을 때, 그 죽은 나무에서 새싹이 피어나고 있었다. 겉으로는 끝난 듯
보였지만, 그 나무의 내부에서는 다시 살아나려는 생명의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작가는 그 장면에서 중요한 깨달음을 얻는다. 죽은 것처럼 보이는 존재 안에도 다시 살아나려는
에너지와 몸부림이 남아 있다는 사실. 그 생명의 감각은 이후 '염원'의 돌탑 안으로 들어온다.
그래서 김동희의 돌탑은 돌이면서 동시에 나무이다.
돌처럼 무겁고 단단하게 버티지만, 그 표면에는 나무처럼 다시 살아나려는 생명의 결이 흐른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조형적 선택이다.
돌탑은 염원의 상징이고, 나무의 질감은 회복의 생명성을 암시한다.
작가는 이 둘을 겹쳐놓음으로써, 단순히 소원을 비는 형상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려는 마음의 형상을
만들어낸다.
작품 속 검은 여백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그것은 무너짐 이후의 침묵이자,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이다.
그 위에 놓인 흰 돌들은 그 침묵 속에서 가까스로 남아 있는 염원의 흔적처럼 보인다.
먹, 옻, 숯가루가 만들어내는 검고 깊은 표면은 어둠을 닮았고, 그 위에 드러나는 돌과 나무의 결은
생명의 흔적처럼 떠오른다.
이번 전시 '한국적 동시대성 : 마음의 탑, 지식의 책장'에서
김동희의 작업은 '마음의 탑'이라는 축을 이룬다.
김동희의 한국성은 돌탑이라는 오래된 생활과 민간적 상징, 먹과 장지와 숯이 가진 물성,
그리고 염원이라는 정서적 구조 안에서 드러난다.
한국의 산길과 절 입구, 마을 어귀에서 만날 수 있는 돌탑은 거대한 제도나 공식적 기념물이 아니다.
그것은 이름 없는 누군가가 자신의 마음을 올려둔 장소이다.
한 사람이 돌 하나를 얹고, 또 다른 사람이 그 위에 돌을 얹으며 만들어지는 돌탑은
개인의 바람이 공동의 풍경으로 남는 방식이다.
김동희는 이 돌탑의 형식을 빌려오되, 그것을 현실의 재현으로 그리지 않는다.
작가의 돌탑은 실제로 존재하기 어려울 만큼 위태롭다. 그렇기에 오히려 더 우리의 삶과 닮아 있다.
오늘의 삶은 단단한 질서 위에 안정적으로 놓여 있지 않다.
개인은 실패, 상실, 관계의 균열, 현실의 압박 속에서 끊임없이 흔들린다.
때로는 아주 작은 이유 하나가 삶 전체를 떠받치기도 하고,
반대로 작은 균열 하나가 모든 것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김동희의 돌탑은 바로 그 불안정한 삶의 구조를 보여준다.
그것은 성공의 기념비가 아니라, 무너지지 않기 위해 매 순간 균형을 찾는 마음의 형상이다.
작가는 돌탑을 쌓는 행위를 "삶의 축소판"으로 바라본다. 적합한 돌을 고르고, 집중하고, 인내하며,
균형을 맞추는 시간 속에서 스스로 이뤄낼 수 있는 힘이 길러진다고 말한다.
그 과정은 명상과도 같으며, 마음의 탑을 쌓는 순간들이 모여 지금의 자신을 이룬다.
이 말은 김동희의 작품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염원'은 결과로서의 탑보다, 탑을 다시 쌓으려는 과정에 가까운 작업이다.
작품 속 돌탑이 완벽하게 안정되어 있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탑은 끝난 것이 아니라 계속 버티는 중이며, 계속 살아나는 중이다.
그것은 무너진 뒤에도 다시 생명을 밀어 올리는 나무의 새싹과 닮아 있다.
김동희의 '염원'은
우리는 무엇이 무너진 뒤에도 다시 쌓는가.
죽은 듯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도 무엇이 다시 자라나는가.
그리고 마음의 탑은 몇 번의 무너짐 이후에야 비로소 우리 자신이 되는가.
를 말하고 있다.
그의 돌탑은 고요하지만 약하지 않다.
그것은 검은 침묵 위에 남겨진 작은 의지이며,
죽은 나무의 내부에서 다시 밀려 올라오는 새싹처럼,
무너짐 이후에도 다시 살아가려는 마음의 형상이다.
임수식의 '책가도'가 한 사람의 지식과 기억이 축적된 '지식의 책장'을 보여준다면,
김동희의 '염원'은 무너진 마음을 다시 세우는 '마음의 탑'을 보여준다.
하나는 오늘을 기록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오늘을 견디는 방식이다.
이 두 작가가 함께 놓일 때, 한국적 동시대성은 과거의 전통 이미지가 아니라
오늘의 삶 속에서 여전히 작동하는 감각으로 드러난다.
-르비드 대표 민경숙
제2전시실 임수식 '책가도'

책장이라는 초상, 오늘의 책가도

임수식의 '책가도'는 전통의 형식을 단순히 현재로 옮겨온 작업이 아니다.
그의 작업은 조선 후기 책가도라는 익숙한 회화 양식을 빌려오지만, 그 안에 담아내는 것은 과거의 문방기물이나 이상화된 지식의 세계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개인의 내면이다.
작가가 바라보는 책장은 책이 놓인 가구가 아니라, 한 사람이 축적해온 시간과 취향, 사유와 기억이 응축된 장소이다. 전통 책가도는 책과 문방사우, 기물, 장식적 사물을 통해 지식에 대한 욕망과 학문을 향한 이상을 시각화한 회화 양식이었다.
그러나 임수식은 이 형식을 현대인의 실제 책장으로 전환한다. 그는 서재를 촬영하고, 그 이미지를 한지에 프린트한 뒤, 조각보를 잇듯 손바느질로 화면을 구성한다.
작가는 2005년부터 조선 후기 18~19세기의 책가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왔으며, 서재 사진을 한지에 프린트하고 손바느질로 이어 하나의 책가도를 완성해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임수식의 작업이 사진이면서 동시에 사진으로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의 책가도는 기록으로서의 사진, 전통 회화의 구도, 한지의 물성, 손바느질의 시간성이 한 화면 안에 결합된 복합적 이미지이다.
사진은 책장의 현실을 붙잡고, 한지는 그 현실에 전통적 감각의 결을 부여하며, 바느질은 이미지 위에 손의 시간을 남긴다. 그렇게 완성된 화면은 디지털 사진의 매끈한 표면이 아니라, 시간과 기억이 꿰매어진 하나의 직물처럼 보인다.
임수식의 책장은 정물도 아니고 인테리어도 아니다. 그것은 초상이다. 일반적인 초상이 얼굴을 통해 한 사람을 드러낸다면, 임수식의 '책가도'는 책장이라는 우회적 장치를 통해 한 사람의 내면을 보여준다.
어떤 책을 읽었는지, 어떤 책을 가까이에 두었는지, 무엇이 오래 남아 있고 무엇이 비워져 있는지, 책 사이에 어떤 사물들이 함께 놓여 있는지가 그 사람의 세계를 말한다.
책장은 한 개인이 스스로를 구성해온 지적 지도이며, 동시에 그가 지나온 시간의 흔적이다.
이 지점에서 임수식의 '책가도'는 전통 책가도와 결정적으로 달라진다. 전통 책가도가 책을 가까이하는 삶의 이상, 학문에 대한 권유, 지식의 상징성을 담고 있었다면, 임수식의 책가도는 특정 개인의 실제 삶을 드러낸다.
그것은 보편적 이상으로서의 책장이 아니라, 개별적 삶의 기록으로서의 책장이다. 그러므로 그의 작업에서 책은 단순한 지식의 상징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에 스며든 흔적이 된다.
이번 전시 '한국적 동시대성 : 마음의 탑, 지식의 책장'에서 임수식의 작업은 '지식의 책장'이라는 축을 담당한다.
한국적 동시대성을 말할 때 우리는 흔히 전통의 색, 문양, 재료, 상징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임수식의 작업이 보여주는 한국성은 표면적인 장식에 있지 않다. 그것은 책가도라는 전통적 시각 구조를 오늘의 삶과 연결하는 방식에 있다.
그는 조선의 책가도를 현대인의 서재로 옮겨오고, 과거의 문방문화가 지녔던 지식의 이상을 오늘의 개인적 취향과 내면의 기록으로 변환한다.
또한 그의 작업은 한국적 물성을 매우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드러낸다. 한지에 프린트된 사진, 조각보를 연상시키는 손바느질, 여러 조각의 화면을 이어 붙인 구성은 전통적 감각과 현대적 매체가 충돌하지 않고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손바느질은 이미지의 표면에 물리적 시간을 남긴다. 그것은 책이 쌓이는 시간, 사람이 읽고 사유하는 시간, 한 사람의 세계가 형성되는 시간과 연결된다.
임수식의 책장은 고요하지만 밀도가 높다. 책들은 말이 없지만, 그 배열은 많은 것을 암시한다. 책등의 색과 두께, 낡음과 새로움, 수직과 수평의 리듬, 비어 있는 틈과 겹쳐진 사물들은 모두 하나의 시각적 문장이 된다.
관람자는 책장을 바라보며 그 책장의 주인을 상상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타인의 책장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던 시선은 자신의 책장, 자신의 취향,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방향으로 이동한다.
이것이 임수식의 '책가도'가 지닌 동시대성이다. 그는 전통을 보존하거나 복원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전통의 형식을 통해 오늘의 개인을 읽고, 오늘의 삶을 기록하며, 현대인의 내면을 시각화한다.
그의 작업에서 책가도는 과거의 회화 양식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의 초상 형식으로 다시 태어난다.
결국 임수식의 '책가도'는
한 사람을 이루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읽고, 무엇을 남기며, 무엇을 통해 자신을 구성하는가.
그리고 오늘의 책장은 우리 영혼의 어떤 얼굴을 비추고 있는가.
에 대한 고찰이다.
이번 전시에서 임수식의 책가도는 김동희의 '마음의 탑'과 마주하며, 한국적 동시대성의 또 다른 층위를 만든다.
김동희가 돌탑을 통해 무너진 삶을 다시 쌓는 마음의 구조를 보여준다면, 임수식은 책장을 통해 한 사람의 지식과 기억이 어떻게 축적되는지를 보여준다.
하나는 마음을 쌓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삶을 기록하는 일이다.
두 작가의 작업은 서로 다른 형식으로 오늘의 한국적 감각이 여전히 쌓이고, 이어지고, 기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임수식의 '책가도'는 그래서 단순한 책장의 이미지가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영혼을 비추는 또 다른 초상이며, 전통이 오늘의 삶 안에서 다시 숨 쉬는 조용한 방식이다.
-르비드 대표 민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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