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가도' 시리즈는 조선 후기 궁중 회화 양식인 책가도를 현대인의 책장 사진으로 재구성한 작업입니다.
본래 책가도는 책과 문방기물을 통해 학문과 지식, 삶의 태도를 상징하던 전통 회화였습니다. 작가는 이 오래된 형식을 오늘의 시간 속으로 가져와, 한 사람의 책장이 그 사람의 취향과 개성, 삶의 궤적을 드러내는 또 다른 초상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처음 작가 자신의 책장을 촬영하고 그 이미지를 마주했을 때, 사진 속 책장이 제 얼굴을 대신할 수 있는 하나의 초상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후 여러 사람의 서재를 찾아가 그들이 읽고, 모으고, 남겨둔 책들을 기록해왔습니다.
책장은 단순히 책이 꽂힌 가구가 아닙니다.
그곳에는 한 사람이 지나온 시간, 사유의 방향, 지적 욕망, 취향과 기억이 쌓여 있습니다. 어떤 책은 오래 머문 생각을 보여주고, 어떤 책은 아직 도달하지 못한 질문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서재는 한 사람의 내면이 조용히 드러나는 매우 사적인 공간입니다.
"저는 잘 정돈되고 연출된 책장보다, 실제 삶의 흔적이 남아 있는 책장에 더 마음이 갑니다. 꾸며지지 않은 서재에는 그 사람의 얼굴이 있습니다. 책의 배열, 낡은 책등, 빈자리, 겹쳐진 종이와 사물들은 모두 그 사람의 세계를 이루는 작은 단서가 됩니다."
'책가도'는 전통 책가도의 형식을 빌려오지만, 과거의 이미지를 반복하는 작업은 아닙니다. 임수식 작가는 사진이라는 현대적 매체를 통해 오늘의 책장을 기록하고, 그 안에서 한 개인의 지식과 삶이 어떻게 축적되는지를 바라봅니다. 전통 책가도가 책을 가까이하는 삶의 이상을 담았다면, 임수식 작가의 책가도는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책과 사물을 통해 자신을 구성해가는 방식을 보여줍니다.
책장은 오늘을 기록하는 장소이며, 동시에 한 사람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이 작업을 통해 관람객이 타인의 책장을 바라보며 그 사람의 삶을 상상하고, 나아가 자신의 책장과 자신의 모습을 다시 들여다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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